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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충고, 하이젠베르크의 회상 노론사학 골지르기


1)아인슈타인은 1932년에 독일을 탈출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해 드레스덴의 물리학연구소에 부임한 신임 국장이 현대 물리학이 '유대인의 도구'나 다름없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치에 동조하는 100여명의 독일 교수들은 상대성 이론이 '비과학적'이며 철저하게 틀린 이론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서에 연대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내가 틀렸다면, 한 명이면 충분했을 텐데"

미국정부의 망명 승인을 확인한 뒤, 아인슈타인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2)(나치정권 출범후) 1935년초까지독일의 대학과 공과대학에서 1,145명의 교수와 강사들이 쫓겨났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레나르트(Philipp Lenard)는 신문기고에서 "이방 정신은 이미 자발적으로 대학, 아니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레나르크와 그의 친구 슈타르크(Johannes Stark)는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을 "유재인의 졸작"이라며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유대인의 것이라 생각한다"고 빈정댔다.


'독일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3제국의 자연탐구 분야의 이념이다.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중심을 차지하는 현대물리학에 대항해 레나르트와 슈타르크는 완전히 색다른 물리학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그들은 어떤 새로운 것도 만들 능력이 없었다.


3)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게 됐을 때, 플랑크(Max Planck)는 몸소 총통을 만나러 갔다. 프리츠 하버를 복직시켜달라고 탄원하기 위해서였다.


- - 히틀러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리안' 혈통의 플랑크가 왜 '유대인 돼지'를 위해 이런 일에 끼어드느냐고 반박했다. 플랑크는 그 길로 돌아가 과학계에서 은퇴해 버렸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를 '유대인 돼지'라 부르는, 막 돼먹은 정권을 위해서는 결코 자신의 과학적 재능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인용자 주: 1)막스 플랑크는 베를린대 교수, 열역학 체계화에 공헌, 플랑크상수를 도입하는 양자론 전개로 1918년 노벨물리학 수상 2)프리츠 하버는 베를린대 교수, 암모니아 합성법 발견으로 1918년 노벨화학상 수상, 독가스 개발에 참여해 1차 세계대전 전범으로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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