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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을 배은망덕하고 위선적 인물로 그린 책 노론사학 골지르기

소설가 김훈이 쓴 '남한산성'의 한 장면.

남한산성 41-47쪽.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송파나루를 건너던 예조판서 청음 김상헌은 얼어붙은 한강을 건넌 뒤, 얼음길 우여곡절을 피해 이끌어준 늙은 사공의 목을 거침없이 쳐버린다.


사공의 어린 딸이 끓여준 미숫가루까지 얻어마시고, 늙은 사공의 안내를 받아 얼음길을 무사히 건넌 뒤 한강의 남쪽 선착장에 발을 얹자마자 청음은 돌아서서 사공을 죽인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이지? 자신이 강을 건너게 도와준 사공을 청음은 무슨 이유로 그냥 베어버린 것인가?


얼음길을 아는 뱃사공이 살아있으면 혹 청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너도록 다시 도와줄 지 모른다는 전술적 이유때문에? 명분이 (저들 생각에) 맞으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노론 류의 독단을 이 삽화로 은유한 것인가?


같은 책 341-344쪽. 청음은 사직상소를 올리고 들보에 목을 매 자결을 시도하나, 도승지가 때마침 들이닥쳐 명주끈을 끊어 김상헌을 죽음 직전에서 구한다.


"아직 죽을 때가 오지 않았음을 김상헌은 알았다. - - 묶여서 삼전도로 끌려가서 거기서
적의 칼에 죽는다면, 아마도 사공이 죽은 자리에서 가까울 것이었다" 소설가 김훈이 찾아낸 응급 봉합술이다.


어쩌면 청음의 자살 미수가 위선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공을 베는 배은망덕을 감수하도록 거꾸로 설정했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상상력에 따른 문제이니까.
 
척화파의 영수이며, 노론 북벌론의 정신적 지주이자, 장동 김씨 세도 권력의 종조인 청음 김상헌을 이런 모습으로 묘사하려면 상당한 사료의 뒷받침과 용기가 필요할 터.


소설가 김훈은 아무래도 켕겼던지, 책의 일러두기를 통해 몇가지 도망갈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1. 이 책은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2.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 3.참고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연려실기술(이긍익),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정약용) 등등. 4.옛 기록에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소설가 김훈이 벌이는 몸부림- 그 내막은 모르지만 웬지 애처롭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살아 날뛰는 언어 폭력집단의 수뇌부와 그 하수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아름다운 아호 이야기 노론사학 골지르기


모 명문고등학교의 동창 명부를 보니, 아호를 허주(虛舟)라 쓰는 사람이 10여명이나 된다고 하더군. 인생은 빈 배라... 좋지. 하긴 조상님들 중에도 허주를 호로 삼은 분들이 꽤 많으니까.

그런데 허주라 자칭한 사람들이 여럿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어떻게 불러야 하나? 요즘 유행하는 짝1호, 짝3호처럼 허주1호, 허주5호 이렇게 부를 건가? 그 광경도 참 볼만 하겠구먼.


아호 얘기를 하자면 빠질 수 없는 분이 꼭 한 분 있지. 거 왜 지금의 판교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리에 간판이 걸려있던 모 재단의 설립자 말이야. 해 일(日)자, 바다 해(海)자 쓰시는 분 말이여.


어느 작명가의 작품인지, 아니면 눈먼 곡학아세가 아부의 극을 달린 산물인지 몰라도 아무튼 대단해. 이건 마치 "태양처럼 빛나시며, 바다처럼 깊으시며..."운운. 북조선 쪽에서 자주 듣던 레파토리여. 이런 어마어마한 아호에는 걸맞는 사연이 넉넉히 있을 것인대, 궁금하네.


옛날 조상님들은 대부분 자기가 사는 동네 이름으로 아호를 짓고 불리우고 했던가 봐.


남인의 종주로 존숭받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은 고향인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의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얽어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 생활에 들어갔는데, 이 때 토계를 퇴계(退溪)라 개칭하고, 자기 아호로 삼았다고 전해지네.


직계 제자들의 정치적 행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론의 종주로 떠받들리는 우계(牛溪) 성혼(成渾)선생은 요즘 경기 파주 땅의 옛 지명인 파평(坡平) 우계 옆에 살았으므로 후학들이 우계 선생이라 불러 아호가 된 경우라 하더만.


서인 예학의 태두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은 어떤 사연으로 아호를 정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사계 고택이 우수산 자락에 자리잡았으니 근처 어딘가에 모래쌓인 골짜기를 흐르는 시내가 있었음 직도 하겠고...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 선생은 경기 용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살았던 분인데 서울에 두계라는 지명이 있는지 잘 모르겠으니 아호를 정한 내력이 꽤 궁금하기도 해.


그런데 한자로 말 두(斗)는 '크다,북두칠성'등의 의미로도 쓰여 태두(泰斗)라 하면 태산과 북두칠성, 다시말해 최고권위자라는 뜻의 비유잖아. 그렇다면 계(溪)자 항렬의 아호를 가진 퇴계(退溪) 이황(李滉), 우계(牛溪) 성혼(成渾),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보다 더 큰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 선생이라는 얘기? 만에 하나 이리 됐다면 욕 좀 보실 것인데...


한편 김철준(金哲埈) 선생이 아호를 일계(一溪)로 지은 배경이 어떠했는지도 아주 흥미로워.


일계 선생은 두계 이병도 선생보다 27살이나 어린 까마득한 후배이지. 두계 선생이 1954년 종신 학술원회원, 60년 학술원 회장, 62년부터 서울대 사학과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을 때인 63년11월 일계 선생은 서울대 사학과 전임강사를 처음 맡았으니... 아마 일계가 두계 선생의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했을 걸? 당시 학계 풍토로는 말이야.


일계 선생이 언제부터 아호를 정해 밝혔는지 모르지만, 두계 선생은 꽤나 괘씸하게 여겼을 걸.

당신이 퇴계, 우계, 사계보다 더 위대한 두계라 자칭한다면, 나는 그냥 흔해빠진 하나의 시내(一溪)라 부르겠소라는 의미가 되니 말이야.


일계는 89년1월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시 순직했고, 두계는 89년8월 우리 나이로 94세, 명예와 권력, 천수까지 다 누린 뒤 임종했으니, 이승을 뜨기로는 일계가 오히려 몇달 빨라요.   


그나저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은 저승에서 이 두 후학-일계, 두계 -을 만나 무어라 타박했을까?


아니 이 싸가지 없는... 감히 내 스승의 아호와 같은 항렬을 취하다니. 이 사문의 우환거리들...


 


실증사학 명저에 인조반정 없다? 노론사학 골지르기


중종반정을 설명할 때 온갖 죄과를 들먹여 연산군의 폭정을 성토했던 실증사학계 원로들이 광해군을 내쫓은 인조반정에 대해선 갑자기 침묵한다. 왜?

이기백 교수는 '한국사신론' 284쪽에서 "광해군은 군비도 게을리하지 않아 城池와 병기를 수리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국방에 유의하였다. 이러한 광해군이 西人에 의하여 몰려나고(인용자주:오식이 아님- 정확히 '몰려나고'로 표기돼 있음) 仁祖가 즉위하였다.(仁祖反正,1623)"이라는 기술이 전부다. 국방에 유의한 광해군이 왜 갑자기 서인에 의해 몰려났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한우근 교수는 '한국통사' 309쪽에서 "광해군은 그를 둘러싼 북인의 사주를 받아, 횡포한 성격때문에 왕위 계승권을 동생에게 빼앗겼던 그의 친형(臨海君)과 계비의 소생(永昌大君)을 역모죄로 몰아 죽이고, 계비(仁穆大妃) 또한 유폐시켰다. 일본군 침략(인용자주:한 교수는 왜란 대신에 '일본군 침략'이라는 표현을 고집함) 이래 정권에서 물러났던 서인은 이 사건을 이용하여 마침내 쿠데타로 왕을 폐하고 왕의 조카를 새로 왕(仁祖)으로 추대하면서 정권을 장악"- -(하략)- -이라고 기술했다.


"서인이 쿠데타로 왕을 폐하고 새 왕을 추대했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역사관만 추구하는 실증사학계의 기조에 비춰 다소 파격적이다. 하지만 역시 '인조반정'이라는 단어는 없다.


왜 일까?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학 교양교재인, 한국사 개론까지 일일이 감수하지는 않을 터?


더욱이 실증사학계의 두 거봉이 남긴 '불후의 명저'를 감히?


그렇다면, 엄하기로 늦가을 서릿발 같다는 사문의 자율결의? 글쎄...


실증사학계는 워낙 전공 분야를 따져 '니꺼 내꺼 가르기'에 능하니, 필경 어딘가 인조반정을 전담 마크하기로 소유권 등기를 딴 사람이 있기는 할 터인데...


 


배구협회의 반성과 대응을 촉구한다 자유로운 이바구


대한배구협회는 도대체 무엇하는 단체인가?

배구를 진흥하고, 경기력 향상을 통해 국제 경기에서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민 사기를 드높이고 국민들의 여가 선용과 체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끝도 없이 읊어드릴까?


그래 바로 이런 이유를 내걸어 국민의 혈세와 프로연맹의 돈을 받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호화빌딩의 사무실에 앉아 따뜻하게 지내게 된 것일 터이지.


그렇지만 일단 자기가 맡은 일은 하고 자빠져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인간은 왜 다자고짜 욕부터 하고 보냐고?


하도 답답해서 그런다. 도대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일의 선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빈둥거리니 보기에 하도 딱해 그런다.


지금부터 배구협회가 해야 할 매우 시급한 일에 대해 알려줄 터이니 잘 들으시오.


김연경 선수가 드디어 유럽배구연맹(CEV)이 주최하는 여자배구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소..

이미 보도를 통해 들어서 안다고? 이 보시오. 그럼 그게 무슨 뜻인지를 빨리 알아채리고 대응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 아니요? 보도통해 들었다고 하고 말면 그건 일개 국민의 반응이지, 배구협회의 반응이 아니지.

뭔 소리냐고? 내 이래서 보다 못해 나서게 된 거여. 귀 씻고 잘 들어보시오.


배구관계자들이 한국배구 100년의 걸물이라고 자랑하는 김연경 선수의 소속팀 페네르바체가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소.

이건 남자축구로 말하면 박지성 선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른 것보다 더 귀한 소식이요. 아니 배구인들 입장에서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뉴스지.


그런데 김연경 선수의 이 쾌거는 그야말로 여자배구의 인기와 진흥에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뉴스가 아닌가? 아직도 내 말귀를 못 알아듣겠는가? 그럼 아예 귀구멍을 째고 소리를 퍼부어주지.


배구협회장이 협회홈피 인사말에서 "흑룡 어쩌고 해가면서 올해도 월드리그와 그랑프리를 국내에서 개최하니 배구팬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운운해 봤자 무엇하냐고..


김연경의 유럽리그 경기 모습을 국내 방송(케이블이라도)에 올리기만 해보라고..


관심 갖지 말래도 국민들, 배구팬들이 알아서 감격 흥분하고, 배구인들 어깨에 힘들어가고, 초중고에서 공과 씨름하는 어린 선수들 사기충천하고, 부모님들 더욱 힘이 나서 뒷바라지하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언제부터 유럽축구 생중계에 목을 맸소. 언제부터 새벽 경기보느라 눈이 벌개져서도 그냥 기분이 좋아 출근하자마자 박지성, 이청룡 해가며 기분좋아 날뛰었느냐고.


2002년 월드컵 4강하고 박지성, 이영표가 네덜란드 리그에 나가면서 였소. 지금 한국축구는 이제 아시아 무대는 무조건 당연하고 오직 유럽, 세계무대가 목표가 됐소. 유소년 축구하는 3-4살 꼬마에게 물어보시오. 장래 목표가 무엇인지.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 따발총처럼 대꾸할겨.


그렇다면 배구는? 초중고 배구선수들에게 장래 꿈이 뭐냐고 물으면? 국가대표? 프로선수? 그리고 또 뭐? 몰라...


골프의 박세리, 피겨의 김연아를 보면 모르겠냐고? 아시아 무대가 아니라 세계 최고 무대라야 얘기가 되고 금메달도 올림픽서 따야 씨가 먹히는 세상이여.


협회 이 양반들아! 김연경 선수가 일기당천, 필마단기로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을 뚫어냈는데, 이 기쁜 소식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용기와 희망을 함께 나누고 배구 진흥에 결정적 계기로 활용할 생각이 없냐고? 배구의 김연경이 뜨기 시작했는데, 이를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나?


김연경 선수가 세계 배구강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유럽리그에서 그들과 당당히 맞서며 후위공격, 블록셧아웃, 서비스 에이스로 환호하는 모습을 TV화면으로 국민들이 보고나면 배구 진흥하지 말래도 저절로 되네 이사람들아. 도대체 넋을 놓고 뭐 하고 있는가?


뭐? 방송사와 협조가 잘 안된다고? 예끼 이사람들아! 그거 하는 게 바로 협회 일이 아닌가?
국민들에게 배구 인기 진흥하는 게 협회일이 아니면 대체 뭐가 협회 일이란 말여?


정말 딱하고 한심해서 짜증이 날 정도지만, 이왕 선심쓴 거 끝까지 써 주지.


김연경 선수가 뛸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경기와 결승전은 오는 3월24일, 25일 잇따라 예정돼 있네.


그러니 그동안 유럽리그의 예선전과 8강전은 이미 끝난 경기라 TV중계료가 아주 싸오. 또 유럽리그는 시차가 있으니 4강, 결승을 생중계하는 문제는 일단 예선 경기를 녹화 방송해 보고 그 반응을 봐가며 결정해도 늦지 않네.


협회는 일단 방송사측과 협의해서 비록 뒤늦은 중계이지만 김연경 선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뒤 시청률, 광고여건 등을 봐서 생중계는 방송사가 판단하라고 해도 괜찮을 겨.


가뜩이나 지금 프로배구는 승부조작 혐의에 일부 저촉돼 국민들의 따가운 논총을 받고 있소. 이런 위기를 정면 돌파할 묘수를 김연경 선수가 만들어 냈는데 협회는 입에 넣어줘도 씹기싫어 뱉을 요량인가?
 
이만큼 알려줬는데 못 알아들으면 그런 배구협회는 그냥 간판을 내리시오.


한국배구 100년의 돌연변이 김연경 선수가 온 몸을 바쳐 만들어낸 이 기회를 배구 중흥의 촉발제로 제대로 활용하기를 정말이지 간곡히 간곡히 비나이다.


아인슈타인의 충고, 하이젠베르크의 회상 노론사학 골지르기


1)아인슈타인은 1932년에 독일을 탈출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해 드레스덴의 물리학연구소에 부임한 신임 국장이 현대 물리학이 '유대인의 도구'나 다름없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치에 동조하는 100여명의 독일 교수들은 상대성 이론이 '비과학적'이며 철저하게 틀린 이론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서에 연대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내가 틀렸다면, 한 명이면 충분했을 텐데"

미국정부의 망명 승인을 확인한 뒤, 아인슈타인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2)(나치정권 출범후) 1935년초까지독일의 대학과 공과대학에서 1,145명의 교수와 강사들이 쫓겨났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레나르트(Philipp Lenard)는 신문기고에서 "이방 정신은 이미 자발적으로 대학, 아니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레나르크와 그의 친구 슈타르크(Johannes Stark)는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을 "유재인의 졸작"이라며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유대인의 것이라 생각한다"고 빈정댔다.


'독일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3제국의 자연탐구 분야의 이념이다.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중심을 차지하는 현대물리학에 대항해 레나르트와 슈타르크는 완전히 색다른 물리학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그들은 어떤 새로운 것도 만들 능력이 없었다.


3)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게 됐을 때, 플랑크(Max Planck)는 몸소 총통을 만나러 갔다. 프리츠 하버를 복직시켜달라고 탄원하기 위해서였다.


- - 히틀러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리안' 혈통의 플랑크가 왜 '유대인 돼지'를 위해 이런 일에 끼어드느냐고 반박했다. 플랑크는 그 길로 돌아가 과학계에서 은퇴해 버렸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를 '유대인 돼지'라 부르는, 막 돼먹은 정권을 위해서는 결코 자신의 과학적 재능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인용자 주: 1)막스 플랑크는 베를린대 교수, 열역학 체계화에 공헌, 플랑크상수를 도입하는 양자론 전개로 1918년 노벨물리학 수상 2)프리츠 하버는 베를린대 교수, 암모니아 합성법 발견으로 1918년 노벨화학상 수상, 독가스 개발에 참여해 1차 세계대전 전범으로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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